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무 덴노 (문단 편집) === 스진 덴노 관련 === 현재 일본 역사학계에서 그 실체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10대 [[스진 덴노]]부터라는 것이 정설이다.[* 《천황제 50문 50답》, 歴史教育者協議会(일본역사교육자협의회)/ 36p.] 진무 덴노가 즉위했다고 기록된 기원전 660년은 [[조몬 시대]]에 해당한다. 이때의 일본은 토기를 만들고, 물고기를 사냥해 먹으며, [[도래인]] 집단에 의해 농사가 시작된 부족국가 시대로, 정사(正史)에서 교차 검증이 가능한 일본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[[후한]] [[광무제]] 때(57년)이다. 지금의 규슈 북부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노국(奴國)의 왕이 후한에 조공하여 '''漢委奴國王'''(한위노국왕)[* [[http://enjoyjap.egloos.com/683802|실물 사진]]]이라는 칭호와 금인[* 단, 지금 현재 [[에도 시대]] 때 발견되어 일본의 [[국보]]로 지정된 '漢委奴國王'(한위노국왕)이라는 현존하는 '금인'은 날조 조작 논란이 있다.]을 하사받고 나서이다. 그 후에도 후한 [[안제]] 때(107년) 왜왕 수승(帥升: 스이쇼)이 후한에 입조하여 [[노예]] 160명과 공물을 바친 기록이 있다. 이후 등장하는 기록은 《[[삼국지]]》 〈위지〉 '동이전'과 《[[삼국사기]]》 〈신라본기〉에 등장하는 [[야마타이국]]의 [[히미코]](기원후 2세기)이다. 진무 덴노 이후 [[결사팔대]]에 속하는 천황들은 업적이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부실할 뿐만 아니라 재위기간 또한 비정상적으로 길다. 오래 사는 것이야 있을 수 있다 해도, 어지간히 후사를 늦게 보지 않는 이상(왕의 의무 중 하나가 후계자를 두어 후계구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) 왕이 오래 살면 그 아들은 어쩔 수 없이 재위기간이 짧아진다. 청나라에서 성조 [[강희제]]가 61년간이나 재위하는 바람에 아들 세종 [[옹정제]]는 매우 장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위기간이 수명에 비해 짧은 13년에 불과했듯이. 기원전 660년이 60갑자로 신유년이기 때문에, 후대의 〈'''신유혁명설'''〉[* 간지가 신유인 해가 되면 세상에 큰 변화(혁명)가 생긴다는 도참설이다.]을 의식하여 연대를 만들어냈으리란 설도 유력하다. 현대 역사학계에서 진무 덴노는 가상의 존재로 간주되긴 하지만, 아직도 많은 신사의 신관들과 신화를 신앙하는 사람들은 (개인적으로) 진무를 실존인물로 여긴다.[* 참고로 NHK 조사에 따르면 신토를 자신의 종교로 여기는 일본인은 소수이고 무종교인의 비율이 높다고 한다.] 물론 실존인물이라면 스진 덴노가 속한 부족의 [[비조]](9대조)쯤 되거나 혈통적 관계가 없는 선대 부족장 정도의 실존 인물이었을 가능성은 있다. 살던 시대도 기원전 660년보다는 수백 년쯤 뒤에 살았을 것이다. 또 신화적인 의미에서 진무 덴노와 [[아마테라스]]의 손자라는 [[니니기|호노니니기]], 아마테라스는 같은 존재이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